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잔드 왕조 (문단 편집) ==== 알리 마르단 칸 vs 카림 칸 ==== 이스마일 3세와 와지르 자카리야의 지지로 명분상 우위를 확보한 카림 칸에게 전황이 유리해지자, 알리 마르단 칸은 로레스탄 총독 이스마일 칸과 함께 [[후제스탄]]으로 후퇴하여 현지 총독인 카압 부족의 셰이크 사드와 동맹했다. 1752년 봄, 알리 마르단 칸은 케르만샤로 진격하여 반격에 나선 카림 칸을 격파했다. 기세를 얻은 알리 마르단 칸은 잔드 부족의 거점인 말라예르를 향해 진격했으나 [[나하반드]] 부근에서 벌어진 재대결에서 카림 칸에게 패배했다. 카림 칸은 산중으로 도주한 알리 마르단 칸을 집요하게 추격했고, 결국 후자는 [[오스만 제국]]령 이라크로 망명했다. 서부의 위협이 제거되자 카림 칸은 재차 이란 북부를 장악한 카자르 부족의 모하메드 하산 칸을 공격했으나 패배하고 테헤란으로 후퇴했다. (1752년 말엽) 한편 바그다드에 머물고 있었던 알리 마르단 칸은 아프샤르 조의 나디르 샤의 외교관이었던 무스타파 칸과 동맹했고, 카림 칸의 북부 원정이 실패한 것에 고무되었다. 1753년 초엽, 알리 마르단 칸은 스스로 사파비 조의 샤 타흐마스프 2세의 아들이라 주장하는 이를 데리고 로레스탄으로 향했다. 파슈툰 군벌 아자드 칸[* 본래 이스마일 샤를 따랐으나 샤로흐 샤가 집권한 후 아제르바이잔으로 철수했고, 1751년 7월 조지아를 침공했으나 카헤티 왕국과의 키르흐불라흐 전투에서 패배했다.]의 지원을 얻어낸 그는 케르만샤를 장악한 후 대동한 '왕자'를 '호세인 2세'로 즉위시켜 이스마일 3세를 옹립한 카림 칸의 정통성에 도전했다. 사파비 왕조의 두 샤한샤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아자드 칸 역시 호세인 2세를 인정하며 양측은 이란의 패권을 두고 격돌했다. 그러나 호세인 2세의 대관식을 치르느라 알리 마르단 칸의 진격은 지연되었고, 더욱이 전자가 사실은 왕자가 아니라 아제르바이잔인 부친과 아르메니아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평번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폭로되며 병사들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탈영병들을 그대로 흡수한 카림 칸은 2년간 케르만샤를 포위한 끝에 알리 마르단 칸을 격파했고, 무스타파 칸을 사로잡았다. 알리 마르단 칸은 호세인 2세와 함께 철수하던 도중 후자를 실명시켜 이라크로 보내버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